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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기사승인 2018.11.13  10: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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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욕심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바람같이 구름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유명한 시조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성예언(自省豫言)이란 말을 지니고 살아온다. 이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어떤 암시나 예상을 가져보는 것을 뜻 한다. 가령 나는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라고 자성예언을 하면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진로가 선생님의 길로 풀려가는 교육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커서 정치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그는 역시 어느 틈에 정당 활동도 하고 각종 선거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와 당선의 영광도 맛보는 자신의 운명을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어렴풋하게나마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떤 자성예언의 조짐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막연하게나마 청렴한 선비가 돼야 하겠다는 희망을 가졌었고 중·고등학교 학생이 되면서 그러한 선비 선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문화운동의 기수가 되고 싶다는 자성예언을 가져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운동의 기수란 너무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가령, 책을 출판하는 일. 방송을 하는 일. 신문잡지를 만들고 보급하는 일. 그림이나 글씨를 쓰고 이를 전시하는 일. 등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것이 문화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소질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 느낀 것이 바로 붓글씨 서예(書藝)였다.

붓글씨, 서예예술의 연수와 창달도 어느 문화원동 못지않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작업이 될 것으로 나는 믿었다.

드디어 나는 서예공부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고 그러한 결심을 한 나는 잔혹하리만큼 서예에 몰두하게 이르렀다. 나는 서예를 예사로 대하지 않고 마치 사활을 걸 정도로 비장한 각오로 임하게 했다. 지금은 먹물이 상품으로 나와 있지만 당시에는 몇 시간씩 먹을 갈고 팔이 아프도록 임서를 하고 온 종일 작품을 제작하면서 서예에 도전 했었다. 국전 등 공모전이 닦아오면 거의 해마다 수백 장의 화선지를 버리면서 눈이 퉁퉁 붓고 다리가 지가 날정도로 연서(硏書)를 해야 했다.

실로 뼈를 가는 습작(習作)의 연속 이었다. 그 결과 나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국전에 입·특선을 걸쳐 드디어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정하는 국전초대작가 가 된 것이다. 비로소 문화운동의 한 분야를 터득한 서예가가 된 것이다. 이는 실로 서예가라는 별을 하나 따기 위해서 수 십 년을 철차탁마(切磋琢磨) 외롭고 피나는 역정 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나름의 순수한 정열과 정성을 다 바쳐온 셈이다.

어느 예술가든 어느 학자든 그가 이렇게 순수한 목표를 세우고 한 분야에 혼신의 노력을 쏟는 마음과 계절처럼 아름답고 귀중한 세월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예술과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만이 탐스러운 결실을 얻으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조그만 목표가 달성됐다고 해서 학문이나 예술 활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오늘의 성과로만 만족해서는 아니 된다. 설사 그에게 빛나는 오늘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지향(指向)하지 않으면 그에게 낙후의 퇴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고 정열을 다하여 새로운 일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예가로서 무거운 책무인 지역 예총과 중앙예총, 각 문화예술단체 회장, 사회단체 회장, 대전시의회 의정지도자로 입신을 한 나는 어찌어찌하다 예술 혼(魂) 50년을 몽땅 국가와 지역문예 진흥, 그리고 문화운동에 다 쏟아온 것 같다 실로 이렇게 많은 큰일들이야말로 내겐 오히려 과분한 책무였는지도 모른다.

예술 창작에 대한 의욕과 역량을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이격도야(人格陶冶)와 너그러운 덕성 그리고 훌륭한 심성을 지닌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나는 매사를 신중히 그리고 남은여생 꿈꾸고 이상을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가꿔 오고 또 나가고 이다. 그리고 청산은 나를 보고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을 명심(銘心)해 참고 기다리며 더 많은 덕을 쌓아 나가야 한다고 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지역문예 진흥과 문화예술의 균형발전을 위해 내게 주어진 문화예술운동에 헌신,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도 어느 경향이나 유파(流派) 그리고 일시적이나 자극적인 유행에 현혹되지 말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선비처럼 청렴하게 살다가 가라 한다.

조종국 원로서예가· 전 대전시의회 의장

 

목요언론인클럽 webmaster@mokyo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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