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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편 내편 정의를 잃은 언론

기사승인 2022.11.15  1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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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용(경영학 박사. 목요포럼위원장)

요즈음 언론은 왜 이러는가. 한국 언론사상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진영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은 유례가 없다.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감옥을 가고, 폐간을 당하며, 심지어 만주이역으로 쫓기었던 의기에 찬 언론을 찾을 수가 없다. 정의를 위해서는 어떠한 강압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지사적 언론은 사라지고 말은 것인가.

필자는 일제 강점기 우리 고장 출신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 단재는 본래 충북 청주시 낭성면이 고향이지만 태어나기는 대전이었다. 고령 신씨들이 세거했던 대덕 송촌으로 알고 있다.

단재는 한학을 공부한 선비로 젊은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나 벼슬길을 포기하고 한양의 여러 신문의 기자가 되어 논설을 썼다.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활약하며 당당한 시론(時論)을 써서 민중을 계몽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우리는 단재를 민족사학자로 평가 한다. 일본이 제일 싫어했던 ‘성웅 이순신장군’의 생애를 발굴한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은 일제 강점기 신음하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항일정신의 결정체였다.

오산학교 교사시절 단재는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면 얼굴을 숙이지 않고 꼿꼿이 선채로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세수물이 온통 상의를 다 적셨다고 한다. 일제의 어떤 강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만주로 망명하여 조국독립을 위해 애쓰던 단재는 채포되어 뤼순 감옥에 갇혔다. 차디찬 감방에서 건강이 극도로 약해졌으나 끝내 병보석을 거부했다고 한다, 1936년 2월 단재는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감옥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공자의 ‘춘추대의(春秋大義)’ ‘술이부작(述而不作)’ 정신은 역사기술의 기본 정신을 대변한 말이다. 역사는 사실대로 기록해야 하며 창작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관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역사적 사실을 가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재는 이런 정신을 잘 지킨 언론인이자 사학자였다.

현대의 언론을 가리켜 시대의 ‘춘추관’이라고 한다. 언론이 매일 매일 다루는 기사들은 나중에 역사가 되며 기자들은 중차대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지칭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언론은 춘추관 정신을 잘 지키고 있는 가 짚어 볼 일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있는지. 진영 논리에 빠져 사실을 조작하고 침소봉대하며 선동하지는 않는지. 잘못 된 보도가 있어도 묵살하고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론의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론이 정도를 지켜야 민족의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정권의 나팔수가 되거나 특정정당의 도구나 방패가 된다면 그 언론은 생명력을 잃는 것이다. 신문이 독자를 잃거나 방송이 시청자를 잃으면 답은 뻔하다.

필자는 이 시대 언론사와 언론인들에게 고언하고 싶다. 역사의식을 갖고 불편부당의 자세로 참 다운 공기(公器)로서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다. 네 편 내편에 서서 언론의 진정한 자세를 잃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 시대 언론인들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목요언론인클럽 webmaster@mokyo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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